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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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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인 2024. 3. 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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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면서도 편하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유산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말은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도서관, 극장, 건축, 음악, 생물학, 의사, 수학 등도 그리스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 말은 그리스 시대 부터 이미 우리가 지금 흔하게 사용하는 많은 말들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는 하나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원전 700년경에 그리스는 산맥의 기슭이나 해변 그리고 기름진 땅에서 만들어진 여러 다양한 작은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나라들은 하나의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기에 국가라고 불리었으며, 그리스인들은 폴리스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폴리스는 다른 폴리스와 싸우면서 자유를 지켜 나갔고, 군대를 만들어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국가로 발전한 곳이 아테네와 스파르타 였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행보는 전혀 달랐스니다. 펠로폰네소스반도 남쪽에 있는 스파르타에서는 잘 훈련된 군대의 힘으로 다른 도시들을 공격해서 여러 나라들을 굴복시켰고, 다른 민족들은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노예 생활을 그대로 받아 드리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많이 일어 났습니다. 이렇게 많은 노예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스파르타의 남자들은 모두 군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스파르타라는 영화를 보시면 잘 알 수 있는데요. 모든 남성들이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릴때부터 지속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남자 아이들은 7살때부터 훈련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때 신발도 못 신고 간단한 옷차림만 허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조금씩만 배급받으면서 험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스파트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되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요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토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 농민을 억압하고 착취했는데요.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이런 사회적인 불만을 스파르타 처럼 힘으로 누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요. 아테네 인들은 귀족과 농민들 모두가 함께 동의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솔론이라는 사람인데요 그리스의 일곱 현인 중 한사람으로 베타적이고 강압적인 귀족 정치를 끝내고 오늘날의 민주주의 틀을 세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솔론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토지 소유의 한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노예로 몰락한 농민들을 해방시켰습니다. 빚을 진 사람도 노예로 사고 파는 것을 막았고, 부채를 탕감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하였습니다. 솔론의 개혁 입법 중에서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신적인 왕이나 소수의 귀족이 아닌 시민들이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규정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일 년에 40차례 정도 민회를 열어서 폴리스의 다양한 중요 의사결정을 토론을 하고 법률 제정이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들을 내렸습니다. 

 

 

상시적인 정부 업무를 맡는 위원회도 만들어 졌는데, 그 위원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 선출되었습니다. 또 독자적인 국민 재판소가 법률의 이행을 감시 했습니다. 이로써 솔론은 완전히 새로운 지배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국민에 의한 지배인 민주주의 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아직은 불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막상 아테네에서 실질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남자 자유 시민이라는 소주의 집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의 시민이라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여자들은 정치적인 권리를 이때는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노예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제외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 당시의 이런 정치체계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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